1858년 태어난 루돌프 디젤 Rudolf Diesel 은 그의 이름이 붙은 성능 좋은 엔진의 발명가로 유명하지만 그의 미스터리한 죽음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.
<디젤엔진>
1894년 당시에 가장 좋은 증기기관으로 알려져 있던 것도 열에너지의 7%밖에 일로 전환시킬 수 없는 거대한 찻주전자에 불과했다. 디젤은 그 비율을 10배는 향상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. 더욱이 그가 상상하는 엔진은 연소성 물질이면 사실상 어떤 것도, 즉 석탄가루, 고래 기름, 심지어는 미국에서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던 완전히 새로운 물질인 석유까지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. 디젤의 생각은 옳았다. 좀더 개량된 그의 발명품은 독일을 방문한 미국인 아돌푸스 부시의 눈길을 끌었다. [중략] 1912년 뉴욕에서 열린 미국기계기술자협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디젤은 당시 운항되고 있던 선박 중 365척 – 그 중 140척은 잠수함 – 이 디젤엔진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를 할 수 있었다. 오늘날에도 거의 모든 선박이 디젤엔진을 사용하고 있다. [중략] 디젤엔진은 가솔린엔진보다 훨씬 효율적일 뿐 아니라 동력도 몇 배나 더 많이 낼 수 있기 때문에 장거리용 트럭, 여객용 버스, 진화장비 등에 사용된다.[리더스 다이제스트 잡학사전, 동아출판사, 1991년, pp94~95]
<디젤의 죽음>
그의 나이 55세였던 1913년, 그는 영국 왕립자동차 클럽 회의에서 연설을 한 다음 새로 건설되는 한 디젤엔진 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. 증기선 <드레스덴>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고 있던 9월 29일 저녁, 그는 그의 가장 오랜 친구 두 명과 저녁식사를 한 다음 아침식사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. 그리고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. 그의 선실 침대에서는 그가 잠자리에 든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, 배 전체를 수색해 본 결과 그의 모자와 코트가 가지런히 정돈된 채 후갑판의 난간에 놓여 있었다.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알고 있지만, 그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까지 누구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.[리더스 다이제스트 잡학사전, 동아출판사, 1991년, pp95]
1913년 9월 29일 오후 디젤은 안트베르프에서 우편 증기선 드레스덴에 탑승했는데 런던에서의 “통합 디젤 매뉴팩처링사”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. 그는 배에서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 6시 15분에 깨워달라는 말을 남긴 뒤 그의 숙소로 오후 10시에 돌아갔다. 그러나 그는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. 열흘 후, 네덜란드 배 “코에르트젠”의 선원들이 바다 위에 떠있는 시체를 발견한다. 그 시체는 부패가 심해서 배로 옮기지 않았다. 그 대신 선원들은 죽은 이의 옷에서 그의 개인용품들을 꺼내 보관했다(약통, 지갑, 포켓 나이프, 안경집). 그리고 시체를 바다에 가라앉혔다. 10월 13일 루돌프의 아들 유진 디젤이 그 물건들이 그의 아버지 것임을 확인했다. 디젤이 왜 배에서 떨어졌는지 어떻게 떨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. 그로서는 자살이라 규명할만한 믿음직한 사례를 제시했다.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관계로 인해 그가 살해당할 동기가 있었다는 음모론들도 제기되고 있다. 그러나 증거는 부족하다.[위키피디어 중에서]
